19세기 인상파화가 제임스 티소< James Tissot> 1836~1902

                                    VANITY FAIR (상류사회)

 

밤새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아침에 축축히 젖어있는 밖을 보니 왠지  오늘은 커피 내리기가 싫어졌습니다

자꾸만 혀끝으로, 코끝으로 국민커피인 Tim Hortons

달달한 커피가 악마같은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와 땡긴다 " ...

설탕을 끊겠다는 각오로 살고 있는 나에게 가끔 이 달달한 커피가

피할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으로 다가오는 때가 있는데 오늘아침이 딱 그렇습니다

굳이 차를 타고 가서 미디움 사이즈 설탕하나 크림하나가 든

커피를 손에 쥐니 찾아오는 이 설레임..이건 뭐지 ^^

요딴거 하나에 가슴이 설레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싶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되도록 하루에 10분이래도 내가 설레이는 그 무엇을 위해

시간 보내기를 시도해 보는데요 오늘은 요래요래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티소의 그림을 보는것,

요 정도면 오늘은 괜찮지 않은가 라고 생각해 봅니다

 

 

                                                                        

                                                                                      <Hush> 1875년

제임스 티소의 그림입니다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나 그림을 배우러 파리로 간후

새로운 화풍의 아방가르드에 관심을 가지고 후에 인상파로 불리워진 화가들과

교류를 가졌지만 티소의 그림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아카데미 방식의 그림을 그립니다

이미 사진기의 발달로 사실적인 묘사의 그림은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사라졌는데도 말이지요

1870년 보블전쟁이후 티소는 영국 런던으로 가서 정착을 합니다

당시 영국은 전쟁의 승리로 물자와 자금이 풍부하고 빅토리안 시대의 상류층부인들의 그림을 그리며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누리고 패션잡지의 모델들이나  대중잡지의 삽화등도을 그리는 일을 합니다

 

                                                                          

                                                                       Holiday 1876

 

제임스 티소의 그림에는 무수히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습니다

못생긴 여자와 가정주부를 빼고는 아름다운 여인이면 유한계급이건 노동계급이건 화류계여성이든

가리지 않고 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 그림속에서 비스듬히 누워있는 남자에게

차를 다르는 여인에게서도, 남자의 머리를 기대게하고 돌아 안은 여인에게서도 나른한 향류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런던에 머무르면서 티소는 <파리지엔느>라는 제목의 연작을 발표하는데요

1885년 파리갤러리에서 1886년 런던갤러리에서 두차례 전시회를 가졌지만 비평가들의 평가는 좋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이후 패션이나 복식연구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재조명을 받았으나 인상파라는 큰 미술사조가 바람을 일으키던

시대에 그의 그림은 예술성보다는 상업적인  측면으로 그의 그림들은 평가절하되고 주류화가 그룹에서 제외되었습니다

 

 

 

                                 <The Bunch of Lilacs> 1875

 

 

 

The Ball on Shipboard 1874

 

 

The Traveller 1883 -1885

 

 

 

A Fete Day at Brighton 1875-1878

 

 

Women of Paris- Circus Lover 1883- 1885

 

 

Young Women Looking at Japaness of Objects 1869-1870

 

 

Seaside 1878

 

 

Type of Beauty < 캐슬린 뉴톤>  연대미상

 

제임스 티소는 40세 되던해에  캐슬린 뉴톤 이라는 아이가 둘 딸린 22살의 미혼모를 만나 사랑을 하는데요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당시 미혼모와의 사랑은 티소를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합니다

캐슬린은 28세 되던해 폐결핵으로 죽어버리지만 티소는 평생을 한 여자만을 위해 살고 말년에는 종교화를 그리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많은 화가들 옆에는 영혼까지도 함께 할만한 사랑을 했던 사람들이 있죠

모딜리아니와 잔느, 로뎅과 까미유 끌로델, 모네와 까미유 등등....

 

상상속의 화려한 봄날만큼이나 화려한 티소의 그림, 그리고 여인들... 커피 다 마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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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186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1870년대쯤 미국으로 소개되었다

1865년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후에 많은 미국인들은 그림을 배우러 파리로 갔고

공부를 끝낸후 미국으로 돌아온 화가들은  유럽과는 다른 자연환경의 미국을

자기들 나름대로의 회화스타일로 그리기 시작하면서 미국 인상주의로 발전했다

그들이 그리던 소재나 주제는 유럽 인상파화가들과 많이 다르지는 않는다

르노와르, 시슬레, 피사로등등 프랑스인상파 화가들과 공부를 같이하였던

그들에게서 비슷한 화풍을 보이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주제나 그림의 소재에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유럽 인상파와 다른 미국의 인상주의로 분류될수 있는 힘을 가진다

제 1차 세계대전이후 전 세계에서 부와 힘을 가진 대국으로 성장하였지만

문화, 예술면에서 늘 유럽에게 뒤지던 미국이 현재 현대미술에서

보여지는 중요한 위치는 아미도 미국 인상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토대위에 마련되어진 결과가 아니가 생각해 본다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 빛과 색의 아름다움을  넘어> 의 전시회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고 한다

한국에 있지도 않은 내가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궁금해 하는것은

어불성설이고 그림의 떡이고 좌우지간 말이 안되지만

그럼으로 인해 사이버 상에서라도 그림감상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

 

2011년 여름 파리 오르쉐미술관에 갔을때에도

많은 인상파화가들의 그림이 서울로 나들이 중이어서

경악(?) 을 금치 못하였는데 서울은 왜 이렇게 좋은 전시회가 많은것인지.^^

새해들어 가능하다면 올해보다는 1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자,

가능하다면 생존보다는 실존에 무게를 두고 살자 라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리고 내 실존에 무게를 두는 일에는 그림감상도 있는데.....

전시회 가고 싶으다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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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네디언 화가 Group of Seven  

 

 

10월, 캐나다는 불타고 있는가?...

집 밖을 나서면 어디고 붉게 물든 나무들의 향연이다 그야말로 만산홍엽이다

각각 다른색의 나무들을 보니 자연을 그린 Group of Seven의 그림이 떠오른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린 7명의 화가들 그림은 우리들 주변에서 쉽게 만날수 있다

벽에 걸 그림액자 하나사러 동네 가게를 가도 그들의 그림을 만날수 있고

  온타리오 아트 갤러리, 맥 마이클 미술관등 어디서고 볼수 있을만큼

캐나다의 자연과 삶의 일부를 그린  캐네디언들이 사랑하는  화가들이다

 

 Group of Seven은 1919 년 7명의 화가가  모여 만든 미술모임의 이름이다

 초기 멤버는 프랭클린 카 마이클(Franklin Carmachael),로렌 해리스(Lawren harris),프랭크 존스톤(Frank Johnston) 

A,Y 잭슨(A,Y Jackson), 아서 리스머(Arthur Lismer),J,E,H 맥도날드(J,E,H MacDonald) 프레드릭 발리(Frederick Varley)

등 7명이었지만 1920년에 프랭크 존스톤이 떠나고  A,J 카슨(A,J Casson)이 이 그룹에 합류하게 되고

또 한사람 톰 톰슨을 포함하여 group df Seven 멤버를 여덟에서 열한명까지도 이야기하기도 한다

 

톰 톰슨은 이 그룹을 태동시킨 주요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정식회원은 아니었지만 많은 영향을 끼친 에밀리 카(Emily Carr) 가 있다

1913년 톰 톰슨은 토론토에 있는 디자인회사 에서 이 그룹의 초기멤버들을 만나게 된다

미술에 대한 견해가 비슷했던 이들은 자신들의 예술적 영감을 공유하며 작은 스튜디오를 빌려 그림을 그렸다

1914년 톰 톰슨은 회사를 그만두고 알공퀸공원으로 가서 가이드를 하며 본격적으로 죠지안 베이와 알공퀸등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는 작업을 하다가 1917년  카누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캐나다대사관 블로그 참조> 

 

에밀리 카 (Emily Carr)-Autumn Tree-

 

 

톰 톰슨 Tom Thomson-Jack Pine

                                                 톰 톰슨 Tom Thomson-  In The North land

 

                                                                                                              톰 톰슨 10월의 알공퀸 공원

 

제 1차 세계대전으로 그들은 잠시 해어졌다가 전쟁이 끝난후다시 모임을 가진다

이들은 온타리오, 특히 무스코카나 알고마지역을 여행하며  풍경을 그리는 기술을 익혀간다

1919년 이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독특한 미술형식을 기리는 그룹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정식으로 <Group of Seven> 이란 이름의 모임을 출범시킨다

그리고 1920년 첫 전시회를 연다

이 당시 많은 화가들은 캐나다 풍경을 그리는것을 가치가 없는것으로 여겼으나

전시회이후 이 그룹은 캐나다의, 캐나다만의 새로운 예술사조에

물꼬를 튼 선구자가 되었다는것이다

전시회 이후 1931년 해체될때가지 그들은 온타리오 뿐만 아니라

브리티시 컬럼비아, 퀘벡, 노바스코샤 심지어는 북극까지 여행을 하며

아름다운 캐나다 자연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꾸준히 하였다

잭슨A,Y Jackson-Maple And Birches

 

 

잭슨 A,Y,Jackson-The Red Maple

 

아서 리스머 Arthur Lismer- Bon Echo

                                                           아서 리스머 Arthur Lismer- My Wife Sackville River

                                                            맥도날드      J,E,H MacDonald-Beaber Dam Algoma

 

                                                       맥도날드   J,E,H MacDonald- Batchawana Falls Algoma


                                          프레드 발리  Fred Varley- Stormy Weather Georgian Bay

                                                                                         로렌 해리스 Lawren Harris-Autumn Algoma

                                          Lawren Harris-Shimmering Water Algonquin Park

 

프랭클린 카 마이클 Franklin Carmichael-Autumn orillia 

프랭클린 카 마이클 Franklin Carmichael- October Gold

 

Group Of Seven 의 많은 작품가운데 가을을 그린 그림을 올려봅니다

꼭 밖으로 나가야만 되는것은 아니잖아요

그림을 통해 가을을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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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세뤼지에< 1864~1927>와 나비파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후기 인상주의 화가

 

 파리 쥘리앙 아카데미에서 그림공부를 하던 폴 세뤼지에는

1888년 브르타뉴 퐁 타방 <Pont-Aven>이라는 작은마을을 여행하다가 폴 고갱 <Poul-Gauguin>을 만난다

그에게서 순수 추상미술에 가까운 그림을 배우고 후에 파리로 돌아가

의견이 맞는 젊은  화가들과 만든 모임이 나비파<Nabis> 이다

폴 세뤼지에는 나비파의 창시자이며 나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예언자라고 한다

 그들의 미술이 과거의 종교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뜻으로 시인 앙리 카잘리스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인상파가 자연의 인상 -미묘한 색채위주로 그림을 그렸다면

이들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그렸으며 후에 추상미술의 기초가 되었다

개성이 강했던 회원들의 분열로 1899년 나비파는 해체되었고 그들은 후기인상주의에 속하게 된다

 

 

시골길의 역마차 <The stagecoach Road in the Country with a Cart> 1903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는 폴 세뤼지에의 그림을 보면 우리가 알고있는

인상파의 반고흐나 세잔 혹은 시슬레,피사로등의 화가들과는 많이 달라보인다

어딘지 원색을 과감히 사용하는 화법이 고갱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저 산모퉁이를 돌아 나와 넓어지는 길로 나오는 마차와 달리

좁은 길을 따라 저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베짜는 사람  The Weaver 1888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이그림에서 보여지는 느낌은 다시 고전적인 화풍이 살아난듯하다

입체감이 살아나고 화가의 주관적인 해석보다는

보여지는 그대로를 표현한듯 하다

 

 

                                           Laita강의 낚시하는 사람  Fisherman on the Laita 1890년 파리오르세미술관

 

원색을 사용하는데도 적막한 느낌이  느껴진다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과 땅거미가 내려앉는듯한 산허리의 어두움이

등을 보이고 낚시하는 사람에게 전달되어

 어쩌면 그 사람은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한채 쓸쓸히 돌아갈것 같은데....

 

 

브르타뉴풍경속의 엄마와 아이  Mother and child on a Breton Landscape 1890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가로등이 있는 광장  Square with Street Lamp 1891 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고독 Solitude 1891년 파리오르세 미술관

 

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 <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을 구분한다

외로움은 모든것들로부터 단절되는데서 오는 고통이다

고독은 내 존재의 근원과 하나됨의 희열을 누리는 "홀로있음"의 영광이다

폴 세뤼지에가 선택한 단어는 고독이다

곧 울것같은 이 여인의  고독의 가장 내밀한 본질은 무엇인가?

 

 

<강변의 세탁부> Laundresses at the Laita  River 1892년  파리오르세미술관

 

 

르 폴뒤에서의 석양 the Seat at Pouldu SunSet 1889~1890년

 

 

수잔나와 장로들  Suzanne and Elders 파리 오르세미술관

 

은밀하게 그러나 적나라하게 목욕하는 여인을 훔쳐보는 장로들

나비파는 종교의 기능을 미술이 대신하기를 원했다

19세기말 철학이, 문학이 그랬듯 미술도 타락해 가는 교회에 던지는 메세지인것 같다

 

 

                                                               저녁 Evening 1906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어둠이 내리고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지친 어깨위에서 삶의 무게를 느낀다

저들에게 언제쯤이면 노동의 굴레를 벗어날수 있을까

그런날은 올까....

 

 

                                                                                                  미망인 A widow 1919년 파리오르세미술관

 

 

                                                부적 The Talisman 1888년 파리오르세미술관

 

26.7x 21.3 작은 담배상자위에 그린 풍경화

고갱의 충고대로 보이는대로 그리는것을 시도한 이 그림은

나비파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살아내었던 1970년대에

어느곳에서나 흔하게 걸려있던 액자가 있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 그리고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가 적혀있는 액자

엄마따라 미장원을 가도

친구하고 짜장면(우리땐 누가 뭐래도 짜장면이지 자장면아니었다)

먹으러 중국집에 가도 늘 삶은 그대를 속인다고 했다

그러니까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라면서...

나를 속이는 삶을 연민으로 풀어내는 이 나이가 되니 새삼 그 시가 입가에 머문다

인간들의 삶을 그려낸 폴 세뤼지에 그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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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고 가야하는 길가의 나무들에서 한여름의 냄새를 느낍니다

강렬한 7월의 햇볕아래서 가끔씩 부는 바람에 지친 몸짓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차안에서 바라만 보아도 더위가 팍팍 느껴지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누군가 글을 잘 쓰려면 인간들이나 인류 뭐 이런 거창한 것보다는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쓰는것이 사람들이 공감을  얻어내고 그것이 좋은글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늘만큼은 주제가 너무 무거운 시대의 그림이나 화가의 설명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들보다는 

 일상을 잔잔히 그려내는 인상파그림이 생각나고 그중에서 오늘은 모네의 그림이 좋은 날입니다

 

그림속 센강가의 작은 마을 아르장퇴유에서 양산을 쓰고 있는 여인옆에

저 꽃들은  맨드라미일가  릴리일까  아니면 글라디올러스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어린시절에 한여름을 기억하고....

클로드 모네는 종종 나를  달콤한 오래전 기억속에 머물게 합니다

 

 

*빛의 화가 모네와 인상파 *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프랑스에서 1840년에 태어난 인상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화가입니다

파리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북부의작은도시 르아브르에서 보냈으며

1859년 그림공부를 위해 파리로 와서 피사로, 시슬레, 르노아르등과 친분을 가지게 됩니다

 

1863년 퐁텐블르 (Fontainebleau Forest) 숲에서- 파리에서 그림공부를 하던 모네는

파리살롱에서 요구하는 고전적인 그림들의 화법에 실망을 하게됩니다

모네는 결국 화실을 그만두고 친구인 프레드릭 바질,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아름다운 자연 퐁텐블로 숲으로 갑니다


친구인 바지유는  모네에게 살롱에서 원하는 그림을 억지로 그리지 말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자고 권유를 하게 되지요

퐁텐블로 숲속에서 모네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색을 연구하고

자연의 표정에 따라 밝은 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것을 시도해 보며

후에 팔레트위에 물감을 섞지않는 인상파 기법의 새로운 전형을 개척하기도 합니다

 

        

 

                                                                Impression. Sunrise <해돋이> 1872년

 

1874년 1회 인상파전람회에 출품된 모네의 <해돋이> 그림입니다

모네가 항구에서 해가 뜨는것을 기다렸다가 떠오르는 해을 보자마자

보여지는 현상을 아주 빠른 붓질로그려낸 그림입니다

해가 지면 이 순간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었지요

모네가 생각하는것은 기억하는것을 그리는것이

아니고 지금 이순간 내눈에 비추어진것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파리살롱에서 보여졌던 그림들과 확연히 다른 그림을 보고

전람회 이후  악평을  하였습니다 ."처음 인상만 그린그립"

"그리다 만 그림" "무언가 잘못된 그림"이란 사람들의 조롱속에서 모네의  <해돋이>는

곧 있을 유럽의 새로운 미술사조 인상파를 태동시키는 원인이 되고 인상파는

19세기 후반 미술계는 물론이고 문학과.음악에까지 인상파라는 새로운 사조는 온 유럽을 강타합나다

 인상파라는 이름은 그의 그림 제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카미유와 아르장퇴유

                                                   

                                                     모네는 런던에서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에서 11km 떨어진 

세느강가의 작은 마을 아르장퇴유에서 1872년부터1878년까지  살았습니다

모네의 그림모델이었던 카미유와 결혼을 하여 큰 아들 장과 아르장퇴유에 살았던 때가

모네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할만큼  아르장퇴유에서 많은 그림을 그렸지요


그림속의 모델은 카미유와 아들 장과의 평범한 일상을 그렸으며

카미유는 1879년 자궁암으로 32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뜹니다

모네는  죽어가는 카미유를 바라보며  그린 그림 <임종을 맞는 카미유>를 그렸는데

너무 사랑햇던 한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싶었던것은 아닐까하는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모네는 후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고통속에서 죽어가는 카미유를 보다가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의 빛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붓을 들고 그렸노라고. 이것이 빛의 화가 모네입니다

어찌하든 인상파의 창시자, 모네의 아름다운 마을 아르장퇴유의 풍경들을 보며 

달콤한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아르장퇴유의 산책길 Promenade near Argenteuil-1873년-

 

 

                                    양산을 쓴 여인 The Walk.Woman with a Parasol -1875년

                                                

 

아르장퇴유의 빨간 양귀비 Red poppies at Argenteuil 1873년 오르세미술관

 

 

 

 

 

 

 

 

Camille Monet in the Garden 1873 

 

 

Red Boats Argenteuil-1873

 

 

Fields of Bezons 1873

 

 

Monet's Garden at Argenteuil -1875-

 

 

 

The Artist's Garden  at vetheuil -1880년

 

                                                 엡트강가의 포플라나무 Poplars on the Epte -1891-

 

 

모네는 1883년 센강과 엡트강이 만나는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로 이사를 간 후에

                                                              1926년 죽을때까지 지베르니를 떠나지 않습니다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그린 연작 <수련>은 모네의 대표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파리에서 30~40분 거리에 있는 지베르니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인해

고흐의 오베르 쉬르 우와즈와 함께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합니다

 

이 더운 여름날 모네의  엡트강가의 포플라나무를 보며

모네의 눈으로 이 여름날의 풍경과 일상을 바라보니

더위에 지쳐가던 마음에 한동안 평화가 밀려오는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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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9세기말 20세기초 유럽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에로티시즘의 화가

 

                                                                                                                           2006년  <영화포스터>

클림트의 생애는~

 

1862년 7월 오스트리아 수도 빈근교 바움가르텐에서 7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클림트는

보헤미아출신의 금세공자이자 동판조각가인 아버지의 수공예품을 보며 자라났다

빈곤했던 가정형편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술례"라는 직업을 가지는 학교에 가야했다

1876년 그의 나이 14살되던해 그이 데생실력을 눈여겨 보던 친척이 비엔나장식미술학교를

보내줌으로 클림트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학교에서 만난 동급생 프란츠 마치와 동생 에른스트와 함께 교회창문 디자인, 건물의 벽화를

그리며 미술학교를 졸업할때에는 이미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

1892년 갑작스런 동생 에른스트가 사망하고 그 이후 클림트의 그림속에서

삶과 죽음은 늘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많은 모델들과의 염문으로 14명의 사생아를 남겼다 

다혈질의 소유자였으며 살아 생전에 명성을 누렸고 주변 사람들애게도 존경을 받았다

1918년 1월 그의나이 56세에 뇌일혈 발작으로 반신불수가 되었으나 조금 차도를 보일무렵

스페인 독감이 폐렴으로 되어 2월 6일 아침6시 숨을 거두고 만다

"60까지는 살고싶다"라는 말을  평소에 습관처럼 말했다고 한다

 

클림트의 작품세계는~

 

젊은시절 클림트는 보수주의자들에게 환영받는 화가로,

고대 고전기 미술을 표방하는 19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아카데미 화풍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정신의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이론이나 작가 무질, 호프만스탈의 작품과 함께

상징의 몽환적 세계를 향한 문을 열던 세기말 비엔나의 분위기속에서

그의 그림은 아르누보 양식의 우아함과 추상과 구상의 통합,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색채와 시공을 초월한듯한 구성으로 바뀌게 된다

1897년 인상주의화풍을 거부하는 미술협회의 진부한 사상에 반대하여 클림트의 주도아래

진보적인 미술가들이 모여 결성된 모임이생겼다

분리파라고(Secessionist)하며 클림트를 비엔나분리파의 창시자라고 부른다

1903년 클림트는 이탈리아 라벤나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의 초기 기독교 모자이크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라벤나성의 비잔틴양식예술은 클림트 "황금빛 양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 이후 캔버스위에 금을 칠한 이른바 클림트의 "황금시대"가 시작된다 

황금시대를 끝난이후에는 주로 여름휴양지었던 아테제해변과 별장주변을 그리며

클림트 미술의 25%를 차지하는 풍경화를 남겼다

 

 

아델 블로흐 바우어부인 Frau Adle bloch Bauer -1907년 Oil and gold

 

2006년 경매최고가였던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의 기록을 뛰어 넘은

클림트의 <애델 블로흐 바우어 부인>이다

경매가는1억3천5백만달러(한화 약 1800억원정도)

 

 

 입맞춤 -The Kiss-1907년 벨베데레 궁전안 오스트리아미술관 소장

 

화가인 클림트를 몰라도 어디선가 한번은 본 그림이다

오랜 연인관게를 유지해온 에델 블로흐 바우어부인이 모델이다

이 그림을 끝으로 클림트의 황금시대는 끝이 난다. 더 이상 금을 사용하지 않는다

-The kiss-는 전시를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의 세 시기(The Three Ages of Woman)1905년 로마국립갤러리

1911년 <로마국제미술전 금상>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던 누이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여자의 일생을 그려낸 그림이다

인간의,여자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엄마의 품에 안긴아기와 아기를 안고있는 엄마의 표정에서

젊음,희망,사랑,이런것들이 보이지만 옆에선 늙은여자의 옆모습에서

늙음, 어두움,절망,어떤것으로부터 소외당한 슬픔이 보인다

그것은 반복되어지고 우리는 그것은 삶이라고 한다

 

 

 

                   희망 Hope11 1907~8년 oil and gold on canvas  뉴욕 현대 미술관

 

                                                 아이를 가진 임산부 배위에 해골이 있다

                            아마도 인간이 피해갈수 없는 생과 사의 윤회고리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는 태어난 아기도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을 클림트는 말하고자 했을것이다

 

 

 

프리차 리들러부인 Portrait Of Fritsa Reidler 1906

 

                                                                  클림트 대표작중 하나

 

 

                                             죽음과 삶 Death and Life 1916 개인소장 비엔나

                                            로마국제미술전에서 일등상수상

                             당시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은 말세 비관주의가 휩쓸고 있었다

                 1908년에는 지진으로 8만명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1912년에는 타이타닉호의 침몰사건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삶에 다한 공포를 느끼던 때였다

 

 

유디트1 (Judith) 1901년 벨베데레궁전 비엔나

 

클림트의 유디트는 1908년에 그린 유디트II와 함께  클림트의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표현이 두드러진 그림이다

그림 하단에 남자의 잘린목을 들고 있는 클림트의 유디트는 남성을 지배하는 욕망의 화신의 모습이다

1900년대 유디트는 누구인가? 유디트는 구약성경 외경에 나오는 아름다운 과부의 이름이다

이스라엘의 도시 베툴리아에 어느날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쳐 들어온다

유디트는침략당한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홀로페르네스에게 접근해서 그의 목을 벤다

클림트의 그림밖에서 유디트는 나라를 구한 용감한 영웅이다

유디트의 이여기는 많은 화가들의  그림소재가 되었다

 

 

카라바조-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1598년

 

클림트의 유디트가 1905년 배를린에서 열린 독일 예술가연맹 2차 전시회에서

<살로메>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살로메 역시 성경속의 인물이다

한가지 청을 들어주겠다는 헤롯왕에게 세례요한의 목을 원했던 살로메.

유디트가 가졌던 홀로페르네스의목은 나라를 구한것이었지만

살로메가 원한 요한의 목은 개인의 욕망에 의한것이었다

 

에밀리 플뢰게 Portrait of Emilie Floge 1902

 

 

에밀리 플뢰게 는 평생동안  클림트와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눈관계이다

그림속의 모델이었던 에델 블로흐 바우어부인이나그의 사생아를 낳았던 모델 마리아 짐머만등

많은 여자가 있었지만 죽을때에 클림트가 찾은 사람은 에밀리 플뢰게였다고 한다

 

 

Beech Forest 1901 

 

 

 2012년은 클림트 탄생 150주년의 해이다<1862년~2012년>

올해는 비엔나 어디를 가도 클림트를 만날수 있다

비엔나에게 클림트는"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며 비싸고 아름다운 작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세계 미술계의 오랜 변방이던 빈에 동시대적이고 세련된 모더니즘을 안겨준 이가 클림트이다

파리에서는 1866년 모네의 <풀밭위의 식사>같은 문제작과

대규모 일본판화전시회등 새로운 바람이 부는데 빈의 화가들은 지루하고 권태로운 화풍을 이어같다

클림트가 빈분리파를 창설할때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를 아름다움으로 뒤덮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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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Dec,26,1883-Nov,5,1955> 프랑스화가 파리출생

 

                                               1883년 위트릴로는 몽마르트르에서 로트랙, 드가, 르노와르등  화가들의 모델일을 하다가

                                        후에는 여성화가로서도 이름을 알린  수잔 발라동<1865년~ 1938년>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사생아였던 그에게 위트릴로라는 성을 준 사람은 스페인의 미술평론가인 미구엘 위트릴로라는 사람이었다

                                                       1890년대 파리의 몽마르트르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곳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에서 가난한 화가들의 모델일을 하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태어난 위트릴로는 10살때부터 술을 마셨고

                                      14살때엔 이미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으며 18살이 되었을때에는 수차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그때에 의사는 알코올중독을 치료하기위해 그림그리는것을 권하게 된다                              

                                                                                                                                                 

엄마와 아들

                                                                          수잔 발라동과과 모리스 위트릴로

 

                                                        <르노와르가 그린 그림속의 수잔 발라동>   -1883년-

 

                    

                                                                                              

                                                                   <몽마르트르의 눈길>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위해 그림을 시작한 위트릴로의 초기 그림은<1901년-1907년>

                                                           몽미르트르의 집들과 거리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상파 화가인 시슬레의 그림을 보고 그렇게 그렸으면 좋겠다고 한것처럼

                                                               그의 그림에서 인상주의적인 그림도 보인다


 

                                                                                       

                                                                     <눈 덮인 라팽 아질>

 

                                                         위트릴로 그림에서 끊임없이 보고 있는것은 골목길이다

                                                        몽마르트르에서 태어나 몽마르트르에서 살았고 

                                                    언제나 술에 취해 온 몽마르트르 골목길을 헤메며

                                                           살아온 화가에서  골목길은 가장 익숙한 소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생 마그리트 교회>

 

 

                                                                                 

                                                             <두유 마을의 교회>- 1912년

                                                  위트릴로의 서정성이 돋 보이는 이른바 백색시대의 작품이다<1908년~1912년>

                                                                                

                                                                    

                                                          <Le Passage cottin> 1910년  코탱의 골목


                                                             집들이 고독하면 사람보다 더 쓸쓸하다는데.....

                                                         깨어진 회색벽의 사람들의 집에서 굳게 닫혀진 창문과

                                                              등을 보이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고독하다

 

                                                                                          

                                                                  <미미 팽송의 집>


                                                백색시대 이후 위트릴로에게 많이 나타나는 색은 녹색이다

 


<잔다르크 거리>

 

                                                                                      

                                                                        <포와시 거리>

 

 


<라팽 아질>

"민첩한 토끼"라는 뜻이 있다는 이름을 가진 카페이다

피카소, 로트렉 ,르노아르,등 많은 화가와 문인들이 찾았던 곳이며

                                                          위트릴로와 수잔 발라동도 이곳에 와서 술을 마시며 

                                                              샹송을 즐겨 들었던 몽마르트르의 명소였다고 한다

 


백색시대이후 나타난 녹색

 

 

                                                                                   

                                                                  <몽마르트르의 풍차>

 

                                                                                                       

                                                                      <파리의 골목>

 

                                                                                

                                                                 <몽스니에 베르노의 창고>

 

                                 

                                             

                            <위트릴로가 그린 엄마의 초상>               <수잔 발라동이 그린 아들(위티릴로)와 수잔의 엄마

 


<수잔 발라동과 남편 우터와 그리고 아들인 위트릴로>


         수잔 발라동의 남성편력은 화려했다

          아들인 위트릴로보다 3살아래인 아들의 친구와 염문을 일으키다가

                  이혼을 하고 재혼을 했다 구때 수잔의나이 44세,우터 23세였다고 한다

 

                조그마한 동네 몽마르트르에서 일생을 살다간  

                                                                            위트릴로의 우울하고 불행했던 삶은 

                                                            빈센트,반 고흐나 모딜리아니등의 화가들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위트릴로가 그들과 다른점은 그의 인생은 해피엔딩이라는것이다

                                                신앙심이 깊은 아내를 만나 노후에는 불우했던 어린시절과는 달리 편안했으며

                                                                      72살의 나이로 프랑스 남서부에서 운명하여

                                                                           지금은 몽마르트르에 묻혔다고 한다  

 

                                                                               

                                                         <몽마르트르-성 빈센트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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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싱어 서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년 1월 12일-1925년 4월 14일>

 

                                         싱어 서전트는  이태리 피렌체에서 태어난 미국 사실주의 화가이다

                                     19세기 유럽으로 이주한 부유한 미국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20세기 가장 유명한 초상화가로  주로 유럽의 상류사회의 여인들을 그렸다



<Madame X> 188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존 싱어 서전트가 그린 이 그림은 모델이었던 사교계의 여왕 마담 고트로와

화가 자신을 무한히 추락 시켰던 작품이다

한쪽 어깨끈을 흘러내리게 그렸던 이 작품은 선정적이고 퇴페적이라는

혹평에 시달려 모델이었던 고트로는 한동안 사교계를 떠나 은둔생활을 했으며

존 싱어 서전트 역시 파리에서의 생활을 접고 런던으로 갔다

하지만 당시 인상주의가 활발하던 파리에서 사람들은 누드화에 익숙해져 있었고

저 그림에 대한 비판은 화가와 모델이 미국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었다 한다

 

수정판 <Madame X>

 

                           어깨끈이 수정되었으며 훗날 재기에 성공한 존 싱어 서전트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극복 했고

                                   모델이었던 고트로는 당시 이 그림을 구입하지 않은것을 후회하였다고 한다

 


<마담 x가 걸려있던 작업실>

 

 

                                                                                     

                                                                            <그림을 그리는 존 싱어 서전트>

                                                                            그리고 그의 그림중 수채화



Violet Sargent -1883년

 


Violet Sargent -1889년

 

                                                                    

                                                                                              violet  sargent- 1887년

 


Violet-1881년

 


Violet sargent-1887년

 

처음 존 싱어 서전트를 알게 된것은 < 책을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책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떤분의 블로그에서 제비꽃에 대해 쓰신것을 보았는데

저 화가의 그림과 함께 올려졌습니다<제 블로그 이름이 제비꽃이라서....>^^

위 초상화의 모델은 여동생이며 이름이 바이올렛이라고 하는군요

무엇인가를 알고나면 자주 눈에 띄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몇년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을때에 아마도 저 그림앞을 지나갔을텐데

몰라서 그냥 지나간것을 보면 무식은 용서가 안되는 죄중에 하나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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