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작성
드디어 벼르고 별렸던 유언장작성을 위해 변호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캐나다에서 살면서 유언장작성을 하지도 않고 산다는것은
총없이 전쟁터에 가는것만큼이나 위험하고 무모하고
그래서 결국은 무지 무식한 사람군에 속한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차일 피일 미루며 그냥 무식한 사람으로 살았는데
살다보면 내 결심과는 상관없이
그 일을 꼭 해야만하는 기회가 오더라구요
내가 이건희회장도 아닌데 아이들에게 무슨 재산분배에 대해
변호사씩이나 개입시키고 그럴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우리가 죽어도 우리자식인거 온 조선팔도가 다 아는건데
캐나다는 잘 모르나?,,ㅋㅋㅋ
캐나다에 살면서도 완전 한국씩으로 버티었나 봅니다
그냥 내가 살고 있는 집 하나도 유언없이 두 부부가 사망했을 경우
친절한 정부가 관리에 들어가며
되찾기 위해서는 많은 법적절차를 치루어야 하고
미성년자일경우에는 정부로 재산이 귀속된다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법이 캐나다법이라고 하네요
캐나다에서 대부분의 재산은 부부공동명의로 되어 있는데
갑자기 배우자 한쪽이 사고를 당했다거나 사망을 했을경우에도 역시
남은 배우자가 권리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쌍방간 위임장이 있어야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오늘 이런저런 모양새로 여러번 죽고 왔습니다 ^^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민족들의 후예답게 죽음도 서류로 만들어 놓고
깔끔하게 사는 캐나다 사람들의 사고가 부럽습니다
괜히 유언장앞을 서성대며 감정조절 못하는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개념이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유언장 , 그거 참 묘한 힘이 있습니다
한번씩 "아 나는 유언장 쓴 사람이지" 라는 생각이 들면
자꾸만 마음이 홀가분해져 가고
유언장앞에서 혈기 부릴일이 없어집니다
가장 큰 수혜대상은 역쉬 남편인것 같습니다
" 유언장 쓴 내가 참는다" 이렇습니다 ^^
청소를 하고 난뒤의 상쾌함이나 청량함까지는
아니다해도 살짝 정리가 되는 기분이 있습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고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돌며 저리 돌아 불던곳으로 돌아가는
법칙들에 대한 말씀의 이해는
내안에 있는 연민을 끄집어 내기도 하고
오늘이라는 시간속에서 그저 타성에 젖어 사는 나를
가볍게 흔들어 주기도 하구요
서랍속에 넣어둔 유언장이 내 삶을 멘토링합니다
아침저녁 문안인사 드리듯 한번씩 들여다 보면서
현실속으로 들어온 죽음이 삶을 빛나게 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확실한것 하나는
며칠밖에 효력이 없을거라는 확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시 삶속에서 아웅다웅 살아갈것이고
유언장은 언제까지인지는 알수 없겠지만
서랍속에서 잊혀진채로 그렇게 보관돠어 질것입니다
나? 유언장 쓴 사람이야~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