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에서
곽 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담배연기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한 줌의 눈물을 불빛속에 던져 주었다
1983년 처음 출간되었을때 이 시집을 샀으니 30년이 다 되었다보다....
이렇게 겨울이 시작될쯤이면 한번씩 손이 가던 시였다
시를 읽다보면 시구를 따라 머리로 그려지뎐 겨울의 작은 시골역사풍경,
시 속의 쓸쓸함이 승화되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던 시였다
1980대를 살아온 세대들의 애창하는 명시중의 하나인 <사평역에서>
막차, 완행열차, 간이역 등은 우리들의 젊은시절의 추억속에 단어들이다
같은 세대를 살아온 사람들과 소통할수 있는 시를 읽는다는것은 즐거움이다
삶이 고단하던 사람들이 기다리던 오지 않는 막차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는 사람들...
20대에는 시인의 감수성과 시의 서정성에 무게를 두었다면
지금은 시속에 녹아있는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생각하며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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